무능을 곱씹는 시간 사는 이야기

스스로 무능하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오늘은 표를 만들다, 전체 펀드설정액의 단위가 잘못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내가 가진 데이터는 십조원이었는데, 조원인 줄 알고 작업을 하고 있었던 것. 여태 모르고 있다가 다른 숫자 구하다 발견하고는, 과장님께 깨갱하며 이실직고. 뭐 그럴 수도 있다. 사람이 실수도 할 수 있으나, 헌데 이런 실수가 종종 있다는 게 문제지. -_-

과장님이 다시 보시겠지 싶어 확인을 잘 안 하는 것도 있고, 또 숫자에 대한 감이 잘 없달까. 나름 공대생에 제일 좋아하는 과목도 수학이었건만, 이를테면 금융시장에 관련된 어떤 숫자(예를 들면 자산규모 같은)를 우리 조직 사람들은 대충이라도 감을 잡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몇 천억인지 조원인지 몇십조인지 그런 감을 잡기가 힘이 든다. 뭐 내가 더 노력해야하는 문제겠지.

또 하나. 나는 도전적, 적극적, 진취적. 이런 단어와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주어진 일만 열심히 하는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업무를 발굴해 수행한다'는 것은 윗 사람들이 늘 찬양해마지 않는 업무자세 아닌가. 그런 주문이 들어오면, 또는 그런 필요가 느껴질 때면, 움츠려들고 만다. 일에 대한 열정, 적극적인 업무자세. 이런 건 어떻게 해야 되는 거냐. 휴.  

게다가 난 결혼을 했잖어.
결혼 후에는, 사다놓은 쪽파 두부 등의 야채가 별로 쓰지도 못했는데 상해서 음식물쓰레기통으로 직행할 때라던가. 한시간동안 양지를 끓여 육수를 낸 떡국이 맛이 없을 때. 나름 열심히 요리하고 상을 차렸다 싶어도 밥상이 훵할 때. 등등이 추가되었다.

그 뿐인가. 직장 동료 및 상사와의 관계에서도. 때로는 남편과의 관계에서도. 어떻게 해야 친밀하고 협조적인 관계로 만들 수 있는 건지. 어떻게 해야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을지. 어려울 때가 많다.
 
교과서적인 언어로 말해본다면, 더 성장할 여지가 많은 거잖아!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해야하는 거다.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여기저기 구멍이 숭숭.

잡문 사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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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네이발관 연말공연을 보러갔었다. 사람들로 가득찬 홍대 브이홀의 구석에 앉아 가로막힌 기둥 사이로 오직 능룡군만 보다 왔다. 아름다운 것과 인생은 금물과 2002년의 시간들을 흥얼흥얼. 가사를 대충이나마 외우는 곡들은 그 정도라.

언젠가 다시는 이발사들의 공연에 오지 않으리라 마음 먹었었지만, 어쩌랴. 점점 더 댁들이 좋아지는 것을.

이석원의 감성과 생각에 몇 가지 공감하는 부분이 있다. 아니 아주 좋아하는 부분이 있다.
특유의 까칠한 사람들이 갖는 타인에 대한 예의 같은 것. 이를 테면 이석원이 귀한 시간과 적지 않은 돈을 들여 여기에 와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린다고 하는 말을 들으면 진짜로 이 사람이 감사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또 하나. '꿈이 없다고 고민하지 말아라'라는 말을 과감히 던질 수 있는 사람이 어디 흔하더냐. '목표의 성취' 또는 '꿈의 실현'외의 다른 것을 행복의 발판으로 삼으려는 것에 대해 패배주의를 들이댄다면 글쎄. 수많은 보통의 존재들을 루저로 만들 생각이 아니라면 그건 온당치 않은 것 같다.

특히 최근에 아주 마음에 들었던 문구는 이거다.

"델리애들 이번 신보가 어떤 평가를 받을진 모르겠으나 지금 이순간 현재진행형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앨범 한두장 내고 십년동안 활동 안해서 전설이 되는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박찬호의 한국행에 대해서나, 꾸준히 새앨범 내고 공연하며 음악활동을 이어온 이승환이 오랜 공백 끝에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되는 또래 뮤지션들에 비해 홀대되는 것을 볼 때 가끔 들었던 생각이기도 한데, 이렇게 멋지게 표현해낼 수 있구나 싶었다.

게다가 (지극히 나만의 관점에서) 음반을 내면 낼수록, 음악을 하면 할수록 멋져지고 빛이 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데뷔앨범에서 모든 재능이 폭발하여 정점을 찍고 마는 사람이 있는데, 언니네이발관은 전자에 가깝다고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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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의 잡문집을 샀다. 번역에 대한 이야기를 보다, 하루키가 '호밀밭의 파수꾼'을 재번역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하루키가 번역한 호밀밭의 파수꾼이라니. 와우. 일어를 공부해서라도 한 번 읽어보고 싶지만 건 귀찮고. -_- 여튼 꽤나 신선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글에 대한 평가야 각양각색이겠으나, 나름 세계적인 작가라 할 만한 하루키가 역시 현대고전이라고 꼽을 만한 소설을 번역했다? 와우. '나는 가수다'에서 원래도 좋은 노래가 약간의 편곡을 거치고 보컬을 바꿔 더 좋아지는 그런 느낌일까?

그 다음 챕터가 레이몬드 카버의 이야기인데, 우리나라에서는 레이몬드 카버의 <대성당>을 김연수 작가가 번역했단다. 흠. 나도 김연수의 단편소설이나 에세이는 꽤나 좋아하는 편. 하루키의 <호밀밭의 파수꾼> 대신 김연수의 <대성당>이라도 읽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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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한지 오늘로 87일째.
나의 결혼생활은 무탈하게 흘러가고 있는 것 같다. 단, 남편도 그런지는 모르겠다. ㅋㅋ
산들산들한 미풍을 타고 하루하루가 지나간다.
뭐 가끔은 미울 때도 있지만, 대체로 남편은 착하고 사랑스럽다.


천일의 약속 그냥 그런 이야기

요즘 유일하게 보는 드라마. 아니 거의 유일하게 보는 TV프로그램이라 할 만한 '천일의 약속'
소파에 누워 빨간 니팅 담요를 덮고 눈물 한 두 방울쯤 찌익 흘려가며, 열혈 시청중이다.

21세기의 신파극이라 할 만 하지. 부모 없이 자란 서현이 사랑하게 된 남자는 가정환경의 차이가 너무 큰, 게다가 이미 약혼녀가 있는 사람. 곧 다른 여자와 결혼하게 될 애인과 안녕.하자마자 찾아온 알츠하이머. 그런 그녀가 세상의 전부라며 결혼을 파기하고 달려온 남자. 그 둘의 이야기라니. 이건 뭐 일찍이 영화 러브스토리에서 다루어진 바 있고 거기에 약간의 극적 장치를 가미했을 뿐인 그렇고 그런 변주곡 중 하나 아닌가.

아마 다른 작가의 작품이었음 저런 구닥다리 멜로는 질색이야, 했을 텐데. 그러나 내가 김수현 드라마를 좋아해서 그런지 나는 이 노작가의 순정이 궁금해죽겠다. 70여년의 인생을 살아온, 혹은 살아낸 작가가 생각하는 사랑과 순정. 그게 어떤 건지.

서현을 선택한 지형은 그녀를 배려하고 사랑하기 여념이 없다. 이 남자. 나한테 아까운 건 너말고 아무것도 없다고. 오늘보다 내일 더 사랑하겠다며 사랑을 속삭이고, 서현의 일거수일투족을 안타까운 눈빛으로 쫓으며 보살피기 바쁘다.

이런 남자가. 진짜 있는 걸까
알츠하이머로 점점 자신을 잃어갈 환자를, 그래도 너는 너라며 한결같이 아껴줄 그런 사랑이 있을 수 있는 걸까.

아니. 이건 드라마잖아.라고 해야 하나.

어제 지형의 대사 ‘사랑해. 오늘보다 내일 더’가 흘러나올 때 , 남편에게 나도 저거 해줘~ 했더니 남편이 앞으로 드라마를 끊으란다. 정신건강에 좋지 않다며. 부부사이에 갈등을 유발할 수 있다고. (자기 전 비몽사몽간에 듣긴 했다만 ㅋㅋ)

하지만 한편으로는, 우리가 너무 쉽게 포기하고 타협하는 거 아닌가. 생각한다. 결혼을 하고 나서 그런 질문 참 많이 받는다. 결혼하니까 좋아? 어찌 좋기만 할까. 그래도 좋다고 하면 돌아오는 질문은 대개 솔직하게 말해도 되~

원래 사랑은 호르몬의 작용에 불과하다고. 결혼해봐야 별 거 없다고. 얼마만큼의 의무감과 정으로 사는 거라고. 남들도 다 그렇게 산다고. 그렇게 하나둘씩 노력의 끈을 놓아버린다면. 그것이 평범한 인생의 보편성이라고 애써 위로해버린다면. 절대로 그 이상을 볼 순 없을 거야. 내가 믿지 않는 무언가를 어찌 가질 수 있을까. 

대개 노력하지 않고 얻어지는 것은 없는 법. 순정이고 사랑이고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어떻게 지켜나갈 것인가. 어떻게 사랑하고 사랑하고 또 사랑할 것인가.
그것은 갓 결혼한 나의 숙제이기도 하고. 앞으로 이 드라마에서 보고 싶은 이야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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