샐러리맨이 되기까지 사는 이야기

직장이란 곳에 발을 들여놓은지 이제 6년차에 접어든다

사실 학교 다닐 때 나는 뭘 해서 먹고 살 것인가.에 대해서 치열하게 고민해본 적이 없었다
시험 때만 대충 벼락공부를 하는 평범한 학생이었고, 특별히 동아리 활동을 한 것도 아니고. 지금 생각해보면 내 대학생활을 채운 건 무한대의 자유와 J와의 길다면 긴 연애였던 거 같다. (물론 그것도 좋았지만..) 당연히 고시같은 건 내 체질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게다가 나는 우리 과를 좋아했기에 다른 길을 그닥 생각해보질 않았다. 그렇게 룰루랄라 학교를 몇년 다니다보니 일도 하고 싶었고, 돈도 벌고 싶었고. 졸업한 다음 회사에 들어가서 열심히 하면 다 잘 될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직장인이 된다는 건. 무언가를 선택한 결과라기보단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은 결과에 가까웠다
그렇게 나는 직장인이 되었다

입사하기 전에야 날 뽑아주시기만 한다면 뭐든 몸바쳐 열심히 하겠다는 마음가짐이었지만.
정작 기회를 얻고보니 날 선택해 준 조직에서 난 아무것도 희생하기 싫었다
내 할 일을 다 끝냈는데도 눈치때문에 자리에 붙어있는 게 싫었고, 원치않는 술자리와 2차로 가는 노래방에서 썩소를 지어야 하는 게 싫었고, 위에 올라가기 위해 또는 살아남기 위해 권력에 영합하고 정치를 해야하는 게 싫었다. 눈에 뻔히 보이는, 직급이 높아질수록 가해질 영업에 대한 압박도 두려웠고, 정치적 능력이라곤 한 톨도 없는 것 같은 내가 이 조직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가 불안했다

그 무렵. 진로 때문에 고민하는 청춘은 나 뿐만이 아니었다. 누군가는 고시를 한다며 직장을 그만두었고, 누군가는 유학을 준비했으며, 또 누군가는 치대나 의대에 다시 입학했다. 나와 같은 회사에 다니던 고등학교 선배 L씨와 나는 만날 때마다 농담삼아 우리 한의대를 가야할까? (성적도 안되는 주제에..;;) 등등의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 해 마침 내가 건강검진을 받는 날이 공교롭게도 수능날이었던 지라 선배는 내가 자리에 없자 혼자 수능보러 간 줄 알고 나의 행방을 애타게 찾았다던 기억이 있다

정작 나는 job search의 준비과정에서가 아니라 조직에 몸담는 그 순간.부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할 지가 막막해졌고, 조직에 속하지 않으면서 일할 수 있는 job. 그 많지 않은 선택들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꽤 열심히 고민했다. 특히 친한 친구가 전공과 다른 길을 선택했을 때 마지막으로 또 한 번 열심히 생각해봤고, 이것저것 생각해 본 결과 나는 내 자리에 남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그 때서야 비로소 샐러리맨의 길을 선택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몰랐던 것 같다. 이 회사, 계속 다녀야하는 걸까. 라며 고민하던 시간들 속에서도 내가 조직에서 알게모르게 많은 것을 배우고 있었던 것을.  내가 못 견디겠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 새 괜찮아져 버렸다는 것을. 그렇게 익숙해진다는 것을.

물론 여전히 직장은 나에게 스트레스의 온상이다. 때로는 한달만 쉬어봤으면, 싶다. 그래도 고민과 방황의 시간을 거쳐 얻은 건. 직장인으로서의 내 정체성을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것. 개인적이고 비정치적 인간으로서의 나를 지키면서도 직장에서 소외되지 않을 수 있음을 알게 되었고,  갑님들과도 미운정고운정이 들어 어느새 농담따먹기나 하는 사이가 된다는 걸 경험했고, 업무능력에서나 인격적인 면에서나 훌륭한 상사들도 (간혹) 있다는 걸 보게 되었다. 몇년의 적응기를 거치고야 겨우.

2006년에 입사한 우리팀의 K양이 어느 날 내게. 조직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20대 여자들이 어느 날 직장생활의 스트레스로 돌연히 사표를 내거나 휴가를 낸다는 기사를 봤는데 꼭 자신의 이야기같다는 말을 해 왔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쉽지 않은 적응기를 거치고 있는가보다.


덧글

  • ☆션☆ 2008/10/16 16:49 # 답글

    태그에 구구절절 동감입니다....
  • 박양 2008/10/17 09:25 #

    히히. 그런데 그 때는 언젠가 적응된다는 걸 정말 몰랐던 거 같아요. 회사 오래 다니신 분들 참 대단해보이고 그랬었는데 저도 어느 새 6년.;;;
  • 매듭 2008/10/16 18:55 # 답글

    태그에 구구절절 동감2요. ㅎㅎ
    적응기란건 언제나 쉽지 않죠. 그 시기를 넘어서고 나서 어느 순간 좀 익숙해졌을 때의 느낌은 또 그만큼 흐뭇하기 마련이고 :)
  • 박양 2008/10/17 09:27 #

    저는 조직부적응자가 아닐까?? 고민했었는데 돌아보니 그냥 적응하기 위한 과정이었나보다 싶어요. 이제야 좀 직장에서 망령으로 떠돌다가 실존하기 시작한 것 같달까요. ㅋㅋ
  • 유별 2008/10/16 23:43 # 답글

    우리나라는 학교고 회사고, 개개인의 창의력을 너무 무시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6개월째 현실 도피 중이고; 이제 곧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는 해야 할텐데..
    겁도 나고 막막하네요. 하는 보람이 있고 해서 즐거운 일을 하고 싶어요 ;ㅁ;
  • 박양 2008/10/17 09:28 #

    맞아요. 너무 권위적이고, 개인의 많은 걸 통제하려들잖아요?! ㅠㅠ
    하고 싶은 일, 해서 즐거운 일을 할 수 있다면 아. 정말 행복할 텐데 말이에요.
  • 두리몽 2008/10/17 01:53 # 답글

    조직에 속하지 않으면서 일할 수 있는 job!
    모든 이의 로망이긴 하지만 결코 말처럼 쉽진 않은 일인것 같아요. ㅠㅜ 열심히 달려와 이제 이런 얘기를 할 수 있는 반열에 올라서신(!) 박양님이 참 멋져 보이는 저는~ 아직 모든것이 혼란스럽기만한 사회초년생입니다. ㅋㅋ
  • 박양 2008/10/17 09:31 #

    조직에 속하지 않으면서 일할 수 있는 job. 그런 선택은 정말 많이 없죠..그래서 저는 꼭 다음세상엔 프리랜서 카투니스트로 태어나려구요. 오기사님처럼 살고 싶지 말입니다 하하.

    두리몽님도 그 적응기가 끝나면 그 자리가 꼭 두리몽님의 자리인 것처럼 느껴질 거에요 :)
  • 이요 2008/10/17 10:41 # 답글

    구구절절 동감.^^
  • 박양 2008/10/18 14:42 #

    역시 조직의 쓴맛은 그누구도 피해갈 수가 없나봅니다.ㅠㅠ
  • arden 2008/10/19 22:08 # 답글

    좋은글이네요..새록새록 과거가 떠오르는 듯..시간이 지난뒤에는 내가 그때 그랬었지..하는 것..그런거죠..그 지난 시간에 혹시 박양님이 지금의 쓴맛을 다 겪어 자기도 모르는사이에 내공충만하여 회사를 운영하거나 혹 초년병들의 넋두리를 들어줄수있는 멋진 상사의 위치가 되 있을지도 모르죠..사회초년병이 힘든만큼...중간에서 각..장님들 눈치바야하는 중간급이나 자기 결정하나로 막장으로 치닷을수도 있는 최고경영자의 선택의 순간도 그만큼 힘들다는거....블로그관리하시는것만 바도 모..일처리 깔끔하실꺼가튼데요..ㅎㅎ 사랑받는 샐러리맨 되삼..^^
  • 박양 2008/10/20 10:13 #

    아. 제 역할과 위치가 바뀌면, 또다른 적응기가 필요하려나요.^^ 저는 이제야 조직에 좀 적응되었나 싶으니, 멋진 상사는 아직 멀었어요..언제쯤 내공이 쌓이려는지요..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
  • 시린콧날 2008/10/20 00:43 # 삭제 답글

    월요일 출근길을 앞두고 있는 지금. 조금이라도 일요일의 끝자락 붙들고 있는 와중에 이 글을 읽으니 여러가지 생각이 드네요. 그런 생각들. 상념들. 하지않는 직장인들이 어디 있을까 싶네요. 깊이 공감하게 됩니다. 버티고 있는게 때로는 비참한 것 아닐까하는 생각도 초년병때는 많이 했었는데. 조촐한 글 하나 또 트랙백 걸고 갑니다.
  • 박양 2008/10/20 10:28 #

    회사 나가는 분들 볼 때마다, 이렇게 남아있는 게 무능력한 것 같고. 저도 그랬었어요. 그럴 필요 없는 건데..그게 아닌데..남아있는 사람들이 갈 데가 없어서 있는 것처럼, 그렇게 하찮게 여기는 것 같은 사람들도 좀 있었던 거 같고..;;

    청계천 8가. 참 처연한 노래같아요. 저도 대학교 때 좋아했었는데.^^
    미선이를 본 다음 월요일이라 그런지, 마음이 좀 허전하고 그러네요.
  • 레비 2008/10/26 14:40 # 답글

    샐러리맨..직장..회사.. 익숙한것같으면서도 항상 '아직 멀고먼' 단어들로만 느껴왔던 것같네요..
    허나 제대하면 저도 이제 20대 중반.. 물론 제대가 곧 사회로의 진출을 뜻하는게 아니고 아직 대학이라는 '무한대의 자유(?!)'의 최후보루가 조금 남아있긴하긴하지만 말입니다만 :) 그래도 글 읽어보면서 여러가지 생각들이 드네요 :) 저 역시 무얼하며 살게될지 막연하게만 생각해둔것같네요 :) 자세히, 구체적으로 생각해보려한 시도조차 하지않은것같아 부끄럽군요 :)

    어젠 부대에서 피곤해서 일찍 자려했더니, 매일 밤에 독서실에서 한두시간씩 공부하고 돌아오는 선임 한명이 '아직 군생활은 많이 남았습니다~'며 하루정도 공부 쉬려는 저에게 '하루가 이틀이 되고 이틀이 2년이 되고 그렇게 군생활 남는거없이 끝나버린다' 더군요 :D 군대에 오긴했지만 이게 제 인생의 어느 특별한 별개의 기간이 아닌, 역시나 시간은 똑같이 흐르고 있는 제 귀중한 20대의 2년이라는 생각이 드니, 그냥 '시간죽이기'로 군생활을 마칠수 없겠더라구요 :)

    어느새 적응해버리니까 - 괜찮아 - 하고싶은 그런 job은 왠지 쓸쓸합니다 -_ㅠ 좀더 생각해보고 노력해야겠어요 :)

    날씨가 급작스럽게 추워졌어요 :)
    박양님 감기조심하세요 :) 전 매일 6시에 일어나다보니 목감기 기운이 와서 고생이랍니다ㅠ;;


  • 박양 2008/10/27 09:49 #

    저는 그냥 취업 자체에만 급급해서, 무슨 일을 하면 좋을까 제가 뭘 하면 잘 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 많이 생각 못해봤던 게 나중엔 좀 아쉽더라구요. 모든 게 너무 막연했었고.. 더 많이 준비하고 고민할수록 좋은 결과가 있지 않을까 싶어요

    레비님도 공부한다고 너무 무리하시지 마시고 몸 조심하세요. :)
  • 2008/11/03 20:50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박양 2008/11/04 09:56 #

    이글루 회원은 이글루링크추가하기를 하면 내 이글루의 업데이트한 글이 떠. 니가 사용하지 않는 싸이의 업데이트한 글이랑 똑같은 거지-ㅋㅋ

    어렵다 어려워. 뭐 하나 쉬운 게 없다구 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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