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기억력 사는 이야기

어릴 때 내가 절대로 이해할 수 없었던 것 중 하나는.
어른들이 매 명절 때마다 내게 너 몇학년이니? 라고 물으시는 거였다
나는 여전히 지난 추석 때 가르쳐드린 학년과 같은데, 설에 또 너 몇 학년이니.
어른들은 내게 한번만 물으시는 거여도, 다섯 어른이 물어보시면 나는 다섯번 대답해야하지 않나.
아니. 기억도 못할 거면서 왜 매번 물어보셔들~  입아픈 꼬마. 그게 나였다

그런데 이제 나는 사촌동생들을 만날 때마다 몇학년이니?라고 묻는다(매 명절때마다 보진 못하는 게 다행인가)
사는 게 바빠서..라고 해두자. 도저히 어린이들이 몇학년인지 기억할 수가 없다. 돌아서면 까먹는다
하지만 또 물을 수 밖에 없는 건, 고 꼬맹이가 못 본 사이 쑥쑥 자란 것 같은데 몇학년이 되었는지 진심으로 궁금하기도 하고 한마디라도 말을 더 붙여보려면 꼬맹이의 관심사와 성장단계를 파악하기 위해 몇 학년인지를 꼭 알아야 한다. 미취학아동이 아닌 이상 몇 살이니?로는 부족하다. 몇 살인지를 알아도 몇 학년인지 내 머릿속으로 계산해봐야하니까.

풋풋한 학창시절에 내가 이해하지 못했던 것 중 하나는, 누군가가 나에게 했던 얘기를 또 반복하는 것이었다(물론 잔소리는 제외다) 하물며, 내가 해 준 얘기를 다시 내게 해 주는 경우도 있다. 네 이놈! 그거 내가 말한 거거든? 그 때만 해도 나는, 그 얘기를 누구에게 했는지를 왜 기억못할까 싶었다
 
물론 이것도 옛날 얘기. 어떤 얘길 누구에게 했는지. 그런 걸 어떻게 다 기억하나?
특히나 사회에서 그다지 깊은 친분은 없는 사람들과 대화할 일이 많아지다보니 화제가 떨어지면 이야깃거리가 된다고 생각하는 얘기를 어느새인가 하게 된다. 할 말이 없어도 나도 모르게 무슨 말인가를 하고 있는 그런 경지다. 그러다보니 더더욱 누구에게 이야기를 하고 안했는지 기억 못한다. 그래도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했던 얘기 또 하면 미안하니까, 이 얘기 했는지 안했는지 헷갈릴 땐 '내가 이 얘기 했던가?'라며 간을 본다

이건 불과 몇년전까지. 문자를 보내면 하루이틀 지나 날아오는 답장. 이해 못 했다
나름 답장 기다리고 있는데, 그래도 날이 바뀌어 답장이 오는 건 좀 김 빠지지 않나.
그나마 잊어버리지 않고 보내는 게 신기하긴 했지만.

그런데 내가 요즘 그런다. 일하다가 문자 오면, 아. 쫌만 있따가 답장 보내야지~하다가 까맣게 잊어버린다. 그 다음날 답장을 보내는 건 어제 답장을 안 보냈다는 게 기억나서가 아니라 그냥 핸드폰 만지작거리다가 그 문자에 답장을 안했음을 발견해서일 뿐이다
 
문제는 기억력의 쇠퇴다
사실 어른들은, 내가 간과했을 뿐. 이런 현상에 대해서 늘 시그널을 주고 계셨다. 너도 늙어봐라...라고.
기억력이 떨어진 건 슬프지만. 세상에 이해되지 않는 일 같은 건 점점 줄어들고 있으니 기쁜 건가.

덧글

  • 이요 2008/11/13 00:18 # 답글

    동감. 흑흑. 저도 그런 청년이었다가 요즘에야 이해하고 있답니다.
  • 박양 2008/11/13 09:33 #

    올해 급격히 기억력이 떨어졌음을 실감하고 있어요. 이렇게 꺾이는 건가봐요.흑흑.
  • 매듭 2008/11/13 00:24 # 답글

    하나를 잃으면 하나가 또 채워지는거.. 뭐 그런거 아니겠습니까(웃음)
    근데 전 요새 안면인식장애가 점점 생기는듯한... -_- 당췌 얼굴을 봐도 기억을 못;;
  • 박양 2008/11/13 09:34 #

    안면인식장애...이것도 좀 더 있음 이해하게 될까요? 악.
  • 새벽두시 2008/11/13 02:03 # 삭제 답글

    뇌 용량에는 한계가 있기때문에 머리에 쌓아둘것이 많이 필요한 어른이 되면 자동적으로 어린아이들 학년따위-_-는 뇌 밖으로 밀려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기억력에는 한계가 있는데 기억할게 많아서 그런겁니다. 기억력이 쇠퇴해서 그런거 아닙니다.

    제가 이런 변명같은 글을 댓글로 달고있는 이유가 저도 사춘동상들에게 매년 "얌마~ 너 몇살이냐"라고 묻게 되서 그런거는 절대 아닙니다.









  • 박양 2008/11/13 09:40 #

    하하. 어린이들도 크면 이해해주겠죠? 기억할 게 많아지고 신경쓸 게 많아지는 어른들을요.
    그 때 저는 똑같은 대답 반복하는 게 세상 그렇게 귀찮았었는데..제가 그러고 있으니..ㅋㅋ
  • bluebaby 2008/11/13 09:39 # 답글

    저는 문자 받고 나도 모르고 있다가 하루이틀 있다가 답문보내게 되는 거.. 은근히 좋던데요^^;; 기다리는 사람은 답답하겠지만 내가 핸드폰 문자에 하루종일 매달려 있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이 왠지 기뻐서..;;
  • 박양 2008/11/13 09:42 #

    아. 저도 옛날엔 문자 늦게 보내는 사람들에게 참 자유로운 영혼이로구나 어쩐지 대인배같다..하는 시선을 보냈었는데..제가 답장을 늦게 보내게 되는 건 순전히 답장보내야겠다는 생각을 까먹었기때문이라서요.하하.
  • changable 2008/11/14 18:46 # 답글

    난 사촌 동생들이 몇명 안되어서 그들의 나이와 어지간한 생일 근처의 날짜와 현재의 상태는 거의 모두 기억하고 있지만 뻥 좀 보태서 두다스쯤 되는 사촌 오빠들이 있어서 절대로 이름을 다 못외우고 있어.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집도 사촌들끼리 꽤 친한 편이라 이건 애정의 부족이나 기억력 감퇴가 이슈가 아닌데 뭐가 문젤까? ㅋㅋ

    - 왠지 하루 이틀 지난 답장 이야기에 가슴이 찔리는 1인. :) 난.. 종종 80자 안에 답을 집어 넣는다는 작문 자체가 힘들어서 시간이 걸릴때가 있다눈..

  • 박양 2008/11/14 21:19 #

    음. 나도 지금 이순간 사촌오빠들 이름이 전혀 생각나지 않아. 나의 경우는 기억력 문제인 것 같긴 한데.;; 두다스나 되는 사촌오빠들 이름을 굳이 뭐 알 필요가 없어서 외우지 않게 된 것이지. 그냥 오빠~ 그러면 되니까.ㅋㅋ

    그리고 나도 효가 하루이틀 있다 답장보낼 때가 종종 있다는 것만큼은 기억한다고..괜찮아 이제 다 이해해.-_-
  • 레비 2008/11/15 16:21 # 답글


    여자친구한테 했던얘기 또 하고.. 하는 경우가 많아요 -ㅁ-;; 그러다보니 첨엔 어떤 얘기를 꺼내고나서 쭉 얘기하려하는데, 대뜸 '그 얘긴 했어 ㅎ' 이러면 수습하기도 민망하답니다 =ㅁ= 이 얘긴 친구들한테 했던가, 가족들한텐 했던가 헷갈리는거죠 -.-;; 물론 '내가 그걸 다 어떻게 기억하나?' 싶기도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럴때마다 전 '대화거리가 이렇게나 거기서거기인' 제 자신의 짧은 입담이 아쉽기도 하더라구요 ㅠㅋ;; 항상 대화거리 풍부한 사람이 되고싶은데 말이죠 :)

    어쨌든 밑에서 두번째 문단의 내용은 완전공감이네요 =ㅁ= ㅎㅎ 보낸줄 알았는데 문자가 또 안오고있으면 '왜 답이 안오지? =ㅁ=;;' 혼자 막막 고민하다가 결국은 제가 안보냈다는걸 나중에야 깨닿고 그렇죠 -.-ㅎㅎ

    겨울이 한창 다가오고 있어요 ㅠ 더 추워지지않았음 좋겠는데 :)
    항상 행복하세요 :D !!
  • 박양 2008/11/15 22:35 #

    음. 뭐 대화거리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여자친구한테 빠짐없이 모든 이야기를 하려는 가상한 마음에 한 얘길 또 하기도 한다고 우겨보면 어떨까요.;;; 저도 요즘엔 그래서 문자 확인하자마자 답장 보내려고 그래요. 당최 제 기억력을 믿을 수가 없으니.

    다음 주에 영하로 내려간다네요. 싫어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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