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 사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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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네이발관 연말공연을 보러갔었다. 사람들로 가득찬 홍대 브이홀의 구석에 앉아 가로막힌 기둥 사이로 오직 능룡군만 보다 왔다. 아름다운 것과 인생은 금물과 2002년의 시간들을 흥얼흥얼. 가사를 대충이나마 외우는 곡들은 그 정도라.

언젠가 다시는 이발사들의 공연에 오지 않으리라 마음 먹었었지만, 어쩌랴. 점점 더 댁들이 좋아지는 것을.

이석원의 감성과 생각에 몇 가지 공감하는 부분이 있다. 아니 아주 좋아하는 부분이 있다.
특유의 까칠한 사람들이 갖는 타인에 대한 예의 같은 것. 이를 테면 이석원이 귀한 시간과 적지 않은 돈을 들여 여기에 와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린다고 하는 말을 들으면 진짜로 이 사람이 감사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또 하나. '꿈이 없다고 고민하지 말아라'라는 말을 과감히 던질 수 있는 사람이 어디 흔하더냐. '목표의 성취' 또는 '꿈의 실현'외의 다른 것을 행복의 발판으로 삼으려는 것에 대해 패배주의를 들이댄다면 글쎄. 수많은 보통의 존재들을 루저로 만들 생각이 아니라면 그건 온당치 않은 것 같다.

특히 최근에 아주 마음에 들었던 문구는 이거다.

"델리애들 이번 신보가 어떤 평가를 받을진 모르겠으나 지금 이순간 현재진행형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앨범 한두장 내고 십년동안 활동 안해서 전설이 되는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박찬호의 한국행에 대해서나, 꾸준히 새앨범 내고 공연하며 음악활동을 이어온 이승환이 오랜 공백 끝에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되는 또래 뮤지션들에 비해 홀대되는 것을 볼 때 가끔 들었던 생각이기도 한데, 이렇게 멋지게 표현해낼 수 있구나 싶었다.

게다가 (지극히 나만의 관점에서) 음반을 내면 낼수록, 음악을 하면 할수록 멋져지고 빛이 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데뷔앨범에서 모든 재능이 폭발하여 정점을 찍고 마는 사람이 있는데, 언니네이발관은 전자에 가깝다고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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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의 잡문집을 샀다. 번역에 대한 이야기를 보다, 하루키가 '호밀밭의 파수꾼'을 재번역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하루키가 번역한 호밀밭의 파수꾼이라니. 와우. 일어를 공부해서라도 한 번 읽어보고 싶지만 건 귀찮고. -_- 여튼 꽤나 신선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글에 대한 평가야 각양각색이겠으나, 나름 세계적인 작가라 할 만한 하루키가 역시 현대고전이라고 꼽을 만한 소설을 번역했다? 와우. '나는 가수다'에서 원래도 좋은 노래가 약간의 편곡을 거치고 보컬을 바꿔 더 좋아지는 그런 느낌일까?

그 다음 챕터가 레이몬드 카버의 이야기인데, 우리나라에서는 레이몬드 카버의 <대성당>을 김연수 작가가 번역했단다. 흠. 나도 김연수의 단편소설이나 에세이는 꽤나 좋아하는 편. 하루키의 <호밀밭의 파수꾼> 대신 김연수의 <대성당>이라도 읽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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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한지 오늘로 87일째.
나의 결혼생활은 무탈하게 흘러가고 있는 것 같다. 단, 남편도 그런지는 모르겠다. ㅋㅋ
산들산들한 미풍을 타고 하루하루가 지나간다.
뭐 가끔은 미울 때도 있지만, 대체로 남편은 착하고 사랑스럽다.


덧글

  • 이요 2011/12/28 16:19 # 답글

    김영하가 번역한 <위대한 개츠비>도 있어요.^^
  • 박양 2011/12/28 18:09 #

    오오 그렇군요. 김영하작가가 번역도 하는 줄은 전혀 몰랐어요. 대성당이랑 위대한 개츠비랑 같이 주문해서 읽어볼까봐요. ㅋㅋ
  • 레비 2011/12/29 18:28 # 답글

    초반에 데뷔로 반짝하고 전설이 되는것과 박찬호의 행보가 그러고보니 좀 비슷하네요 ㅎㅎ 요즘 꿈이 없어져서 고민이 많은데 ㅠ 행복의 발판으로 삼을만한게 뭐가 있을지 .. ㅠㅠa 벌써 3달이 다 되어가시는군요 :) 재밌고 행복할것 같아요. 결혼이란거 ㅎㅎ
  • 박양 2012/01/02 14:16 #

    흠. 왜 꿈이 없어지신 걸까. 저도 실은 목표라는 것은 그럭저럭 있었지만, 꿈이라 할 만한 것은 없었던 것 같아요. "꿈"이라는 게 노력한다고 고민한다고 생기는 건 아니지 않을까요. 실은 반짝반짝하는 꿈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이 세상엔 훨씬 더 많을 거 같은데 말이죠. 뭐 꿈이 없어도. 세상을 사는 데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잖아요. 행복해지는 것에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그래도 어쨌거나 무책임한 말을 써 놓았네요. 저도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늘 고민이랍니다. ㅠ
  • 두리몽 2011/12/30 19:48 # 답글

    이제서야 '보통의 존재'를 읽었어요. 번역서만 읽다가 간만에 우리나라 작가의 글을 읽으면 느껴지는 감정의 꿈틀거림(!) 같은게 느껴져서 넘 좋더라구요.. 일상의, 정말 보통의 모습을 담담히 풀어서 글로 적어나가는 느낌이 이런 거였지!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냥 갑자기 박양님 글을 읽으니 저도 이글루스에 글을 자주 쓰고 싶어지네요 ㅎㅎ
  • 박양 2012/01/02 14:20 #

    저도 그 책은 재미있게 읽었어요. 뭔가 포장이 없다는 느낌? '잘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즐거운 것처럼 건강한 것처럼' 뭐 등등. 이를테면 우울함을 말하더라도 '전에는 그랬지만 지금은 안 우울해'라던지 '우울하지만 난 이걸 이겨낼 만큼은 정신적으로 건강해' 이런 뉘앙스가 있기 마련인데 까칠하고 예민한 이 남자는 그런 부분이 전-혀 없어서 저는 굉장히 새로운 느낌으로 읽었었어요. :)

    글은 그냥 쓰고 싶어질 때 쓰면 되지 않나 싶어요! 어서어서 쓰세욧!!
  • 2012/01/03 09:15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박양 2012/01/03 13:15 #

    흐. 형들이 음악안하고 딴짓만 한다고 능룡군이 탈퇴하고 그러기도 하지 않았던가요. 뭔가 이석원은 음악도 현실적인 이유에서 하다말듯 할 듯. '락커들이 돈 많이 버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고 했었죠.

    여튼 언니네이발관은 현재진행중이며 점점 앞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저로서는 오히려 "깔대기"같기도 한데요. ㅋㅋ

  • 2012/01/03 13:03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박양 2012/01/03 13:12 #

    헉 오타네 우낀다
    의도치 않게 언니네 디스 작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언니네이발관은 전자다.로 수정.

    + 알고보니 꽤 예리한데. 꼼꼼한 지적에 썡유! 새해 복 많이 받아~!!
  • 2012/01/07 13:31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박양 2012/01/10 13:30 #

    오 그렇군요. 그러고보니 생각나는데, 저 박민규가 이상문학상 탄 재작년에 산 수상집도 아직 못 읽었어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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